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안녕하세요. fourfinger입니다.
독립기념관은 천안 목천읍에 위치하고
있으며 민족의 자주와 독립을 위해
헌신한 조상들에 대한 역사 및 관련
정보를 알아보고자 하여
여행후기를 남겨봅니다.※ 방문날은 날씨가 매우 좋지 않아 사진 및 모든 배경이 흐린 점 양해 부탁드립니다.
독립기념관의 상징인 겨레의 탑으로
한민족의 기상과 자주와 독립, 통일과
번영에의 의지를 나타냅니다.
높이는 51.3m 가로 세로 각 24m로
마치 새의 날개 또는 기도하는
손의 모양처럼도 보입니다.
사진을 보면 겨레의 탑 바닥에는
대한민국 지도가 그려져 있고
울릉도와 독도까지 표시되어 있습니다.겨레의 탑을 지나 보이는 겨레의 집을
중심으로 양쪽으로 태극기 마당이 있어
겨레의 집으로 한 발자국씩 다가감에
앞서 웅장함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.
또한 겨레의 집을 가는 도중 보이는
백련못은 바라만보아도 차분함을
느끼게 해주었습니다. 날씨만 좋았다면
백련못 앞 실외카페에서 차 한잔의
여유를 느끼고 싶었지만 아쉽게도
날도 춥고 비가 추적추적 내리는
상황이어서 즐기지 못해 아쉬웠습니다.
겨레의 집은 독립기념관의 중심
기념 홀의 역할을 하며 길이 126m,
폭 68m로 축구장만한 크기로
고려시대 건축물인 수덕사 대웅전을 본떠
설계한 건물이며, 북경의 천안문보다
더 크다고 합니다. 실제로 눈앞에서
가까워지는 겨레의 집을 보며 웅장함과
그 멋에 빠져 들 수밖에 없었습니다.
클릭 시 사진이 확대됩니다.
독립기념관 방문 시 생각보다
전시관도 많고 볼게 너무 많았습니다.
물론 궂은 날씨 때문에 모든 전시관을
못 돌아본 것도 있지만, 먼저 방문한
제3전시관(겨레의 함성)의 여러 전시물 중
유독 제 마음속에 와 닿는
전시물 몇 점을 찍었습니다.
'이러한 자주 열망과 열의가
없었더라면 현재는 어떡했을까?'
생각하며 전시품 앞에서
한참이나 머물렀습니다.
※ 전시관내 사진 촬영은 개인적으로 즐기는 경우 가능하나 플래시, 삼각대등의 사용은 금지입니다.
위 사진은 광복 이후 대한민국
임시정부 인사들이 타고 온 C-47
수송기로 실제 광복은 1945년 8월 15일
이루어졌지만, 고국으로 돌아온 날짜는
1945년 11월 23일로 김구, 김규식을
비롯한 15명 제1진과 이후 1945년 12월 1일
제2진인 19명이 나누어서
고국으로 돌아왔다고 합니다.
위 수송기를 보며 인사들은 환국까지3개월이란 시간이 흐른 뒤에야 돌아올 수
있었고 고국으로 돌아오는 비행기에서
얼마나 기쁜 마음과 설렌감정을 갖고
환국을 했을지 전시된 수송기를 통하여
생각해 볼 수 있었던 시간이었습니다.
전시관을 돌아 나오는 길에
광개토대왕릉비를 볼 수 있었습니다.
실제 대왕릉비는 중국 지린성의
지안시에 있으나, 실물과 동일한 석질,
형태로 제작되어 한국의 고대 고구려의
역사를 알려주는 증표이기도 합니다.
이 비를 둘러싸고 역사왜곡이 빈번히
일어나고 있지만, 원래의 비가 손상되었을
때를 대비함과 정과 망치를 사용하여
손으로 새긴 이 비로 후세에게
자긍심을 주기 위해 제작되었다고 합니다.
이 비를 보며 우리 민족의 영향력을
세계로 뻗쳐나갔었던 과거와 더불어
'앞으로의 미래에도 가능하지 않을까?'
하는 생각이 문득 들었습니다.
이 글을 쓰며 정류소에 있던
천안시 마스코트에 대해 검색해보니
횃불낭자가 아닌 애국소녀로 바뀌었습니다.
캐릭터가 좀 더 세련되고 현대적으로
개선되었다고 할까요?? 궁금하시면
한번 찾아보시는 것도 좋을듯합니다.
돌아오는 길에 버스정류소를 찍었는데
오른쪽 사진을 보면 천안 방면과
목천 방면으로 가는 정류소가 구분되어
있으니 대중교통을 이용한다면
꼭 확인 후 승차하시길 바랍니다.
국군휴가보상이 필요한 장병들은
방문 전 독립기념관 홈페이지를
들러 위 사진과 같은 페이지의 내용을
꼭 확인해 보셨으면합니다.
※ 국군휴가보상 군인 휴가증 관련 정보 꼭 등록 가능시간 확인하세요.
또한 일반 방문객들도 편의시설
(보관함), 먹거리 등 여러 정보 확인으로
독립기념관 여행에 도움이 되셨으면 합니다.
One Two Three Four finger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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